[복지칼럼] 통합돌봄 120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참여연대 전체공개 · 조회 6

최혜지  |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1 한 줄의 가사가 4개월 남짓의 통합돌봄 행보를 지켜본 저자의 소회를 잔인하리만치 정확히 포착한다. 시민의 일상이 영위되는 공간에서 개인의 욕구에 조응하는 돌봄서비스를 꾸러미로 전달한다는 통합돌봄의 기본 구상은 사실 반대할 여지가 별로 없다. 따라서 통합돌봄이라는 정책적 패러다임 전환이나 제도 도입의 필요성은 폭넓게 지지되었다.

그러나 패러다임 혹은 지향이 ‘제도’라는 이름으로 질감을 갖게 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통합돌봄의 제도화를 향한 첫걸음부터 기대와 다른 경로를 향할 가능성이 우려되었다. 무엇보다 업무의 상당 부분을 전문기관에 위탁 가능하게 한(더 정직하자면 위탁을 기본값으로 한) 제도적 장치는 비판의 핵심이 되었다. 통합돌봄의 ‘통합’만큼이나 조명을 받아야 하는 ‘지역’의 중요성이 이 제도적 장치로 인해 형해화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지역은 흔히 어떤 곳 또는 장소와 연합하면서, 주로 무기적 공간성을 주목하게 한다. 그러나 지역의 일면은 매우 유기적이고, 관념적이고, 또 문화적이다. 살던 곳, 즉 지역을 개인이 생활하는 물리적 공간이라는 제한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지역은 그 공간 속에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진 수많은 관계, 관계를 따라 흐르는 자원과 온기, 관계 위에 쌓이고 축적된 공동의 시간, 공유된 기억의 유전자가 낳은 문화, 그 모든 것이 담긴 유기적 우주이다. 따라서 어떤 지역도 다른 지역과 동일할 수 없다.

전문기관 위탁 조항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이와 같은 지역의 유기성과 고유성에 대한 인식에 뿌리를 둔다. 물론 일부는 통합돌봄의 일부를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전문기관에 위탁하는 것이 반대해야 할 일인지 재비판한다. (단언컨대) 노인장기요양, 장애인활동지원 등 전 지역에 똑같은, 표준화된 서비스를 공급하는 데 전문화된 조직은 개별 지역마다의 고유한 규범, 문화, 자원 즉 돌봄 생태계에 적합하도록 조율된 돌봄을 기획하거나 생산하는 데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시범사업의 좌충우돌을 통해 나름의 지역화된 돌봄 생태계를 인큐베이팅 했던 일부 지자체마저 위탁 구조를 통해 전문기관이 깊숙이 개입한 통합돌봄의 전면 시행 후 지역색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지난 4개월은 통합돌봄에서 지역성을 퇴색하는 시간이었다.

‘지역’에 부여된 기대를 접는다 해도 우려는 여전하다. ‘통합’은 더더욱 물 건너간 듯하기 때문이다. 통합돌봄의 근거법인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명칭에서 전달되는 바와 같이 통합돌봄은 특히 의료와 요양, 두 서비스의 패키지화를 통합의 핵심으로 한다. 사회적 입원이 재가 돌봄의 대안으로 오용되는, 즉 의료 또는 요양 욕구가 서비스 접근성의 한계로 인해 교차적으로 오용되는 것을 경계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그러나 통합돌봄 시행 이전부터 의료와 요양은 운용 제도, 재정 구조, 담당 부서 등이 분리되어 있고, 통합돌봄의 구상 또한 재택의료센터 외에는 분리된 두 제도를 통합할 뚜렷한 기전을 제시하지 못해 난항이 예상되었다. 재택의료센터도 총 463개로 시군구 당 평균 2.0에 불과하다. 울산은 시군구별 1.20개로 가장 적은 반면, 가장 많은 세종시는 시군구별 5개로 지역 간 편차 또한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다. 결국, 필요에 따라 자기 집에서 의료, 요양, 돌봄이 꾸러미로 전달될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이 되지 못한다.

퇴원한 노인 돌봄을 위해 노인맞춤돌봄사업(이하 노맞돌) 내에 퇴원환자 단기 집중서비스(이하 퇴단집)를 신설했다. 노맞돌의 수행 기관 중 한 곳을 지역별 거점기관으로 정하고, 주로 퇴단집을 전담할 계약직 직원을 노맞돌사업 인력으로 지원해 퇴단집을 운영한다.2 노인이 퇴단집을 주민센터에 신청하거나 병원이 퇴원 환자를 의뢰하면, 주민센터 전담 직원은 구에 이를 승인할지를 묻고, 대상자로 승인되면 거점기관의 퇴단집 전담 직원과 노인이 거주하는 지역의 노맞돌 수행 기관 담당자가 함께 방문조사를 수행한다. 이후 거점기관의 전담 직원은 요양보호사 등 돌봄인력을 노인과 연결해 caring in place를 지원한다.

사실 퇴원 노인의 의료, 요양, 돌봄 욕구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재택의료센터, 장기요양 기관, 노인복지관이 각자가 보유한 서비스를 유기적으로 제공할 때 통합의 의미가 살아난다. 그런데 퇴단집은 돌봄에 대한 노인의 복합적 욕구를 노맞돌이라는 단일 사업으로 해결한다. 특히, 노인이 이미 노맞돌 이용자인 경우, 기존의 노맞돌 서비스는 중단되고 최장 2개월 동안 퇴단집 서비스를 이용한 후, 필요에 따라 다시 노맞돌 대상자로 편입되어 노맞돌 서비스를 받게 된다. 전달체계는 더 파편화되고, 서비스는 오히려 단순해졌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통합돌봄의 설계도에 담고자 했던 통합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지역성은 사라지고, 통합은 의미를 잃었다. 비판을 앞세우기에 120일 남짓한 시간은 너무 짧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통합돌봄에 한시라도 빨리 탈각의 힘을 가하지 않는다면 통합돌봄의 궤도를 정상화할 가능성은 더 희박해진다.

| 미주 |

  1. 오태호 작사 및 작곡, 이승환 노래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중. ↩
  2. 인력지원 방안은 시간제 단기인력, 전담인력 채용, 기존 생활지원사 초과근무 등 다양한 형태가 가능함. ↩


월간 <복지동향> 2026년 8월호(제334호)

The post [복지칼럼] 통합돌봄 120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appeared first on 참여연대.

▶ 참여연대 원문에서 보기

의견 0개
아직 의견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