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1] 산업의 원료가 된 환자 비밀 : 디지털헬스 관련 법안 4건에 대한 비판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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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

들어가며 : 10여 년 만의 결실

2024년 10월부터 2026년 6월 사이, 제22대 국회에는 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육성을 표방한 법률안이 잇달아 발의되었다. 안상훈 의원 안(국민의힘), 서영석 의원 안(민주당), 정태호 의원 안(민주당), 권칠승 의원 안(민주당)이 그것이다. 네 법안은 발의 정당과 소관 부처가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목적을 공유한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만성질환 증가에 대응하고, ‘제2의 반도체’라 불리는 디지털·바이오헬스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그동안 흩어져 있던 보건의료정보를 좀 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네 법안은 하나같이 「개인정보 보호법」과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올린 개인정보 보호장치를, 개별 심의를 거치지 않고 우회하는 특례 조항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정보를 활용한 이득은 민간사업자가 가져가도록 하고 있다.

건강·의료·유전정보는 여느 개인정보와 다르다. 첫째, 바꿀 수 없다. 비밀번호가 유출되면 바꾸면 되지만, 유전체 서열은 평생 바꿀 수 없다. 둘째, 가족에게 위험이 번진다. 한 사람의 유전정보는 그 부모·형제·자녀의 정보이기도 하다. 셋째, 차별의 근거가 된다. 특정 질환·장애·유전적 소인은 보험·고용·대출에서 불이익의 사유로 악용될 수 있다. 넷째, 재식별이 가능하다. ‘가명 처리했으니 안전하다’라는 통념과 달리, 유전체 데이터는 소수의 유전형 표지만으로도 개인을 다시 찾아낼 수 있다. 이 네 가지 특성 때문에, 의료·건강정보의 활용은 다른 데이터와 같은 잣대로 규율될 수 없다.

‘가명 처리’라는 안전장치의 착시

네 법안이 공통으로 의지하는 핵심 장치는 개인정보도 가명 처리라면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건강정보를 가명 처리하여 연구·산업에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름을 지웠으니, 개인은 식별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주된 논지이다.

그러나 이 안전장치는 유전체 데이터 앞에서 무너진다. 가명 처리는 이름·주민등록번호 같은 직접 식별자를 제거하지만, 유전체 서열 자체는 그 사람의 가장 강력한 식별자다. 지울 수 있는 식별자를 지워도, 지울 수 없는 식별자가 데이터의 본체로 남아 있는 것이다. 유전체 정보뿐 아니라 일반적인 가명 정보도 간단한 방법으로 재식별이 가능하다. 재식별은 이론적 우려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며, 한 번 유출된 의료·건강정보는 회수도 무효화
도 불가능하다. 비밀번호와 달리‘재발급’이 없다.

특히 정태호 의원 안은 가명처리 특례의 요건인 ‘과학적 목적’에 산업적 연구 목적이 포함됨을 법률에 명시하고 있다. 이는 상업적 활용의 문을 정면으로 열어두는 것으로, 동의 없는 활용의 범위를 가장 넓게 설정한 조항이다. 나머지 세 법안도 기관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면 민감정보의 동의 면제를 허용하는 구조를 두고 있어, ‘동의 없는 활용’이 예외가 아니라 상례가 될 소지가 크다.

개인정보 보호 체계에서 정보 주체의 동의는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 통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런데 네 법안은 그 통제권을 위원회의 심의로 갈음한다. 심의를 통과하기만 하면, 내 몸에 관한 정보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활용되어도 나는 이의를 제기할 근거를 잃는 것이다.

차별과 배제의 위험이 커진다

네 법안은 모두 의료, 건강정보를 처리하는 관리 전문 기관 등의 금지행위 조항에서 정신질환자·장애인·장기기증자·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 등에 대한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표면적으로는 강력한 보호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조항은 역설적으로 입법자 스스로가 건강정보의 차별 악용 가능성을 이미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은, 그 정보가 차별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금지 목록에 열거된 몇 가지 유형의 차별을 막는다고 해서, 건강정보가 배제의 근거로 작동하는 무수한 경로가 봉쇄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정보는 본질적으로 사람을 위험군으로 분류하는 정보다. 어떤 질환의 병력, 특정 약물의 복용 이력, 유전적 소인은 모두 ‘이 사람은 미래에 어떤 비용을 발생시킬 것인가’를 예측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이 예측은 보험 인수심사, 보험료 산정, 고용 결정, 신용 평가에서 배제의 논리로 악용될 수 있다. 법안이 명시적으로 열거한 ‘차별행위’는 피하면서도, 데이터에 기반한 정교한 위험 선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금지의 실효성을 담보할 구조적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네 법안 어디에도 보험회사나 그 계열 사업자가 의료·건강정보 관리 전문 기관으로 지정되는 것을 제한하는 규정, 계열사 간 정보 공유를 차단하는 규정이 명시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차별을 ‘하지 말라’고 선언하면서, 차별할 수 있는 자에게 정보가 흘러가는 통로는 열어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데이터에 특정 만성질환 관리 이력이나 정신건강의학과 방문 기록이 담겨 있다고 하자. 법안은 이 사람을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배제하는 행위는 금지한다. 그러나 그의 데이터를 학습한 알고리즘이 그를 ‘고비용 발생 예상군’으로 분류하고, 그 분류에 근거해 보험 가입을 사실상 거절하거나 조건을 불리하게 조정한다면, 이는 명시적 금지 목록의 어느 항목에도 정확히 걸리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배제를 낳는다. 데이터 기반 차별의 위험은 바로 이 지점, 즉 ‘차별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도 차별의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마이데이터라는 이름의 역선택

네 법안은 모두 정보 주체의 권리 강화를 내세우며 전송요구권(마이데이터)을 강화한다. 내 건강정보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니, 자기결정권의 확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할 수 있다.

첫째, 역선택이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건강정보를 보험사나 건강관리 플랫폼에 제공하고 우대(낮은 보험료, 할인)를 받을 유인이 있다. 반면 질환자나 고위험군은 정보 제공이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알기에 제공을 꺼린다. 이 선별이 반복되면, 정보를 제공한 건강한 집단은 혜택을 누리고, 제공하지 않은, 혹은 제공할 수 없는 취약 집단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놓인다. ‘자발적 선택’의 외형을 띤 구조적 배제다.

둘째, 취약계층에 대한 사실상의 강제다. 저소득층이나 만성질환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면 할인해 주겠다’라는 제안은, 형식적으로는 선택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거부하기 어려운 압박이다. 정보를 팔지 않을 자유는 그것을 팔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에게만 실질적 자유다. 마이데이터는 정보 자기결정권을 가진 자에게는 권리이지만, 협상력이 약한 자에게는 자신의 가장 내밀한 정보를 내놓아야 하는 새로운 형태의 부담이 된다.

셋째, 마이데이터 사업을 하는 ‘관리전문기관’은 의료기관이 아니어도 된다. 이는 의료기관이 아닌 상업적인 회사에게 개인 의료·건강정보를 활용해 ‘건강관리 서비스’라는 명목의 돈벌이 사업을 하라고 허용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건강관리 서비스는 마땅히 의료기관이 공공서비스 형태로 제공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품화하여 시장에 내놓아 팔게 한다는 점에서 이는 의료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결국 마이데이터 조항은 ‘권리’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으나, 수령기관에 대한 통제 장치가 부재한 상태에서는 정보 주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데이터 시장을 확장하는 인프라로 기능하기 쉽다.

누가 만든 정보로 누가 돈을 버는가?

한국의 보건의료정보는 사실상 공공재에 가깝다. 국민건강보험이라는 단일 공보험 체계 아래, 전 국민의 진료·처방·검진 기록이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집적되어 있다. 이 방대한 데이터는 국민이 낸 보험료와 세금, 그리고 무엇보다 환자 개개인의 몸이 겪은 질병의 경험으로 축적된 것이다.

네 법안의 구조는 공적으로 축적된 이러한 정보를 민간사업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특히 정태호 의원 안은 소관 부처가 유일하게 산업통상부이며, 이 법을 생명윤리법 등에 우선 적용되는 특별법으로 규정한다. 즉 산업 육성 부처가 보건의료정보 활용의 주도권을 쥐고, 그 과정에서 생명윤리 심의 체계는 뒷순위로 밀려난다. 법안이 국가·지자체에 ‘개인 건강정보 활용으로 발생한 이익의 합리적 배분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지만, 이는 선언적 의무일 뿐 구체적 배분 기제가 없다.

문제의 핵심은 가치 창출의 원천과 이익의 귀속이 어긋난다는 데 있다. 데이터의 가치를 만든 것은 환자의 몸과 공적 의료체계인데, 그 데이터로 만든 서비스의 이윤은 민간 플랫폼 사업자에게 사적으로 귀속된다. 국민은 자신의 정보가 재료가 된 상품을 다시 돈을 주고 구매하게 된다. 공공이 만든 것을 사적으로 전유하는 이 구조는, 데이터를 ‘새로운 석유’에 비유하는 산업 담론이 은폐하는 분배의 문제를 비껴가기 어렵다.

더욱이 이런 종류의 데이터 인프라는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를 가진다.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한 플랫폼일수록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럴수록 더 많은 데이터가 모인다. 이 자기강화 구조는 결국 소수의 대형 사업자가 시장을 독점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그렇게 되면 전 국민의 의료 이력이라는 공공적 자산이, 몇몇 민간 기업의 배타적 자산으로 굳어진다. 공공재의 사유화는 단순히 이윤이 사적으로 귀속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정보에 대한 접근과 통제권 자체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문제로 확장된다. 한번 이 구조가 자리 잡으면, 사후에 공공적 통제를 회복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진다.

검증되지 않은 디지털 의료기기의 난립

네 법안 중 안상훈 의원안과 서영석 의원 안은 규제샌드박스(신속처리·임시허가·실증특례)를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서비스가 정식 허가 없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경로를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의료기기 규제의 본질은 시판 전(pre-market) 검증이다. 기기가 인체에 적용되기 전에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이는 번거로운 절차가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기기가 초래하는 위해가 회복 불가능하므로 설계된 구조다. 그런데 임시허가 조항은 근거 법령에 ‘기준·규격이 없거나 불명확한 경우’ 정식 허가 없이 출시를 허용한다. 여기서 ‘기준이 없다’라는 것은 두 가지를 뜻할 수 있다. 하나는 기술이 새로워 기존 분류가 안 맞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기기의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할 과학적 방법 자체가 아직 없는 경우다. 후자라면, ‘기준이 없으니 일단 출시를 허용한다’라는 것은 곧 ‘안전성을 평가할 수 없는 기기를 인체에 적용하도록 허용한다’라는 뜻이 된다. 검증 방법의 부재가 오히려 시장 진입의 사유가 되는 것이다.

심사 주체의 문제도 있다. 임시허가·실증특례를 부여하는 정책심의위원회는 정책 심의기구이지, 식약처, 한국보건의료연구원처럼 임상 데이터를 검토하고 생물학적 안전성, 유효성을 평가하는 과학적·전문적 기구가 아니다. 사후 배상·취소 장치가 있다고 반박할 수 있으나, 이는 위해가 이미 발생한 후에 작동하는 장치다. 의료적 위해는 대개 되돌릴 수 없으므로, 사후 회수는 사전 검증을 대체할 수 없다. 결국 규제샌드박스는 ‘혁신 촉진’의 이름으로, 시민과 환자를 검증되지 않은 기기의 사실상의 시험 대상으로 삼을 위험을 안고 있다.

건전한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대신 단기 이익만 바라는 업체를 키운다

이 법안들이 표방하는 목표(건전한 디지털 헬스 산업 생태계 육성)와 이 법이 실제로 만든 효과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규제샌드박스 구조에서는 정식 허가가 아니라 ‘임시허가·실증특례 획득’ 자체가 하나의 공인된 지위가 된다. 정식 허가는 임상 데이터와 장기간의 심사를 요구하지만, 임시허가는 ‘기준이 없다’라는 사유와 위원회 심의만으로 획득할 수 있다. 여기서 유인 구조가 뒤틀린다. 영세 기업 처지에서는, 실제 제품의 임상적 가치를 입증하는 길고 비용이 큰 경로보다, 임시 허가, 실증 특례 획득을 마케팅과 기업가치 평가의 재료로 삼는 경로가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자본시장에서 ‘규제샌드박스 선정’, ‘임시허가 획득’은 호재로 소비되고, 이는 제품의 실질 가치와 무관하게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신호로 기능한다.

그 결과, 검증되지 않은 기기가 2~4년의 유효기간 동안 시장에 머물다가 정식 허가로 전환할 데이터를 축적하지 못한 채 조용히 퇴장하는 사례가 반복된다. 그 자리를 또 다른 미검증 기기가 채운다. 이 회전문 구조에서는 기술 축적도 신뢰 형성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성실하게 임상 검증에 투자하는 기업이 제도를 이용해 부실 기기를 양산하는 기업에 밀리는 역선택이 일어난다. 시장 전체의 신뢰가 하락하면 정작 우수한 기기마저 외면받는 레몬 시장이 형성된다.

이것이 ‘크림 스키밍(cream-skimming)’의 논리다. 손쉽게 값을 매길 수 있는 임시허가, 실증특례 크림만 걷어가고, 실제 검증이라는 부담은 하지 않는 사업자가 이득을 본다. 법안이 의도한 것은 건전한 생태계의 육성이었을지 모르나, 그 실제 효과는 검증을 우회하여 단기적 이익만 추구하는 ‘좀비 기업’만 들끓는 토양을 마련하는 것일 수 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

네 법안은 세부에서 서로 약간씩 다르다. 정태호 의원 안은 산업통상부 소관의 특별법으로 가장 산업 편향이 뚜렷하고, 권칠승 의원 안은 가장 최근에 발의되어 조문이 가장 방대하며 사망자 정보 2차 활용 특례 같은 새로운 쟁점까지 담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위험의 관점에서 보면, 네 법안은 하나의 방향을 공유한다. 정보 주체의 통제권을 위원회 심의로, 사전 검증을 사후 구제로 대체하며, 공공이 축적한 정보의 활용 이익을 민간에 귀속시키는 방향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고령화와 만성질환이라는 도전은 실재하고, 데이터의 활용은 그 해법의 일부일 수 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되돌릴 수 없는 정보를 다루면서 사전 동의와 사전 검증을 건너뛰고, 공공재에 가까운 정보로 사적 이윤을 독점하게 하는 설계는, 산업을 육성하기는커녕 시민의 신뢰를 무너뜨려 산업의 기반 자체를 허물 수 있다. 진정한 디지털 헬스 생태계는 검증된 기술의 축적과 정보 주체의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 법안들은 그 순서를 뒤집고 있다. 원점 재검토가 필요하다.

ㅣ참고문헌ㅣ

  • 이상윤, 2022, “기업들에게 내 건강정보를 주어도 괜찮을까?” 월간 복지동향. 제282호: 39-44.
  • 이상윤, 2023,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헬스 생태계의 움직임과 시민사회 개입 방향.” 의료와사회. 12호 p28-46.
  • 전진한, 2023, “인공지능이 의료를 바꾼다? ‘디지털 헬스’ 장밋빛 환상 뒤 낡은 규제 완화.” 의료와사회, 제13호 p96-113.
  • 전진한, 2026, “인공지능 만능론과 의료 영리화.” 의료와사회, 제15호 p46-61.

월간 <복지동향> 2026년 8월호(제3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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