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1] 공적연금의 본질과 국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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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찬섭 |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서론

한국의 국민연금은 지난 2025년 3차 개혁을 거쳤다. 이는 1988년 제도 시행 이후 1998년의 1차 개혁과 2007년의 2차 개혁에 이은 것이었다. 1차 및 2차 개혁이 주로 재정안정화론의 입장에 기초한 모수개혁을 주된 내용으로 한 것이었다면, 3차 개혁은 보장성강화론과 재정안정화론의 입장이 타협된 절충형 모수개혁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1 또한 개혁과정에서도 전문가들과 관료, 국회가 주도권을 가졌던 1차 및 2차 개혁과 달리 3차 연금개혁은 시민대표단 500명이 참여하여 숙의과정을 거친 연금개혁 공론화를 진행하는 등 시민들의 참여가 훨씬 더 보장되었다.2 하지만 3차 연금개혁은 절충형이었기 때문에 거둔 성과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갖는 한계도 있는 것이었다.

우선 연금개혁 공론화 과정에서 보험료율은 보장성강화론이 제시한 13%로의 인상안으로 결정되었지만, 소득대체율은 시민대표단이 우세하게 택한 보장성강화론의 50%보다 훨씬 낮은 43%로 결정되었다.3 한국 기준으로 소득대체율 43%를 OECD 기준으로 계산하면 33.4%에 불과하다. OECD 기준으로 계산한 OECD 회원국들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 평균이 공교롭게도 43.0%인데 한국은 이 평균 대비 77.7% 수준에 불과하다(한국의 소득대체율은 2025년 OECD 자료를 기초로 필자가 계산함). 또 3차 연금개혁은 플랫폼 노동의 확산이나 자영업자의 어려움 등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한 사각지대 보완에 있어서는 크게 부족하였다. 그리고 연금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표가 자동조정장치를 타협의 한 축으로 인정하는 발언을 하는 자충수를 둠으로써 진즉에 의제에서 탈락되었어야 할 자동조정장치가 정식의제로 부활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와 민주당은 추가적인 제도개혁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즉, 지난 3차 연금개혁으로 제도개혁에 관해서는 ‘할 일을 다한 것이 아니냐’는 입장인 것 같다. 물론 3차 개혁 이후 군복무 크레딧의 인정기간을 복무기간 전체로 확대했고, 생애 첫 보험료 지원사업도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이것은 3차 개혁에서 미진했던 제도개혁을 추가로 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청년정책의 일환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3차 개혁 이후 국민연금의 추가적인 제도개혁이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정체되고 있다. 이렇게 제도개혁이 정체되는 가운데 기금수익률 제고가 제도개혁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조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이 나서서 최근 국내 주가가 많이 올라 기금수익률이 올라갔으니 기금 소진 시점이 수십 년 연기된 것 아니냐고 발언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기금수익률과 제도는 별개의 사안인데도 기금이 제도를 보장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데서 나온 발상이며, 이것이 심해지면 제도를 금융적 수익률에 의해 지배당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정부는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노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연합형이나 공공기관으로 국민연금공단이 참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다. 정부는 연합형이나 국민연금공단 참여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만들어준다든지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기금형 퇴직연금은 금융기관들에 의해 지배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기초연금과 관련해서 정부는 표적화 개혁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기초연금 대상자 기준을 현행 소득하위 70%라는 목표수급률 방식에서 기준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한 방식으로 전환하여, 대상자를 줄이고 급여수준은 하후상박으로 개편하려는 것이다. 3차 연금개혁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연금담론은 기초연금 표적화로 대표되는 ‘축소’, 국민연금 제도개혁에 대해서는 필요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는 ‘정체’(혹은 표류), 그리고 기금수익률을 앞세우는 ‘금융화’의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지금 우리 사회는 메가트렌드라는 커다란 변화의 흐름에 직면해 있다. 메가트렌드가 사람들의 노동과 삶에 미칠 영향은 쉽게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매우 근본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연금과 관련하여 우리는 3차 개혁 이후 ‘축소-정체-금융화’의 세 가지 흐름에 의해 지배되는 우리 사회의 연금담론이 메가트렌드에 대응하기에 적절할 것인가를 질문해볼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지만, 큰 변화가 있을수록 우리는 공적연금의 본질에 충실한 개혁을 원칙으로 하고, 그것을 새로운 변화 흐름에 맞추어 조정해나가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이하에서는 공적연금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고, 새로운 변화 흐름에 맞춘 국가의 역할이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공적연금의 본질

1. 공적연금의 기원

공적연금의 본질을 파악하는 한 방법은 그것을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공적연금은 퇴직제도와 연관되어 도입되었다. 본인의 근로의사나 능력과 무관하게 일정 연령에 이른 사람을 노동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제도인 퇴직은 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이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극소수의 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물학적인 체력이 다할 때까지 일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도래한 이후에도 한동안 퇴직제도는 없었고, 19세기 중반 이후 독점자본주의로 전환되면서 퇴직제도 도입 요구가 등장하게 되었다. 즉, 이 시기에 자본가들이 기계의 작동속도를 높여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하면서 그에 방해가 되는 고령 노동자들을 퇴출시키기를 원하게 되었던 것이다(Macnicol, 1998, 2015). 그리고 이와 함께 자본주의 초기에 많이 활용되었던 아동은 미래 노동력으로 간주되어 점차 임노동을 준비하는 교육대상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고, 여성은 출산과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비공식적 돌봄자이자 필요할 때 부수적으로 동원되는 주변부 노동자로 자리매김되었다.

그런데 자본이 고령 노동자 퇴출을 요구하던 시기에 장애인도 기계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존재로 취급되어 퇴출되었는데(Oliver, 1990), 장애인의 경우에는 시설이라는 생계대책이 있었지만 고령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그런 생계대책이 없었고, 따라서 퇴직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 되었다(물론 그렇다고 장애인들이 시설이라는 대책에 동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러한 가운데 19세기 후반에 정부 부문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연금제도가 도입되고 퇴직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Thane, 1978). 이는 연금 역사에서 공무원연금과 기업연금(퇴직연금)이 먼저 도입된 배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정부 부문과 대기업에서 도입된 연금의 연금수급 연령은 조금씩 달랐지만, 이는 퇴직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생계대책이 필요했고 그것이 연금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실제로 퇴직제도와 공적연금이 보편화한 것은 2차 대전 후이다. 그리고 이때 보편화한 공적연금은 그에 대한 기여금을 노동자만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즉, 자본)도 부담하는 것으로 제도화되었다. 물론 이 경우 기업의 비용부담은 퇴직하게 된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소득보장비용을 요구할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이를 사회화한 측면이 있고, 또 노동운동은 청년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고령 노동자들의 퇴직을 원했던 측면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2차 대전 후 공적연금은 퇴직을 둘러싼 일종의 계급타협으로서 성립하였다. 물론 이 계급타협에 노인과 여성의 자리는 없었지만 큰 틀에서는 그렇게 타협되었다.

2. 당대 GDP 배분을 사회 전체적 세대 간 배분으로 실현한 공적연금

이 타협은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데 그 전에 먼저 연금은 그것의 재정방식이 적립방식이든 부과방식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당대 총산출물(GDP)의 배분이라는 사실을 먼저 지적할 필요가 있다(Thompson, 1998; Barr and Diamond, 2008). 우리 사회에서는 기금이 있어야만 연금지급이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연금기금설이 지배적이지만 연금기금설은 사실이 아니다. 이전 세대가 기금을 쌓아두더라도 그것은 자산형태로 존재하고, 이 자산으로 연금을 지급하려면 연금을 지급하려는 그 시점에 누군가가 그 자산을 사줘야 하고, 이것을 국민경제 전체로 확장하면 그 자산은 그 시점에 생산된 총산출물(GDP)의 일부로 사줘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금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미래 국민경제와 무관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연금은 현재든 미래든 항상 당대 GDP의 배분이다.

당대 GDP의 배분이 연금의 본질이라면, 2차 대전 후 형성된 타협으로서의 공적연금은 이런 연금의 본질을 국가의 매개에 의한 사회 전체적인 세대 간 배분이라는 형식으로 실현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보면 공적연금이 보편화하기 이전 시기의 노후소득보장은 당대 GDP의 배분이라는 본질을 개별 가정에서의 세대 간 배분이라는 형식으로 실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공적연금 보편화 이전 시기에 개별 가정에서의 세대 간 배분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서구의 경우 구빈법에 의한 구호도 있었고, 종교단체 등에 의한 구호도 있었다(마일즈, 1992; Macnicol, 1998). 그리고 공적연금 보편화 이후에도 국가의 매개에 의한 사회 전체적인 세대 간 배분이 모든 노후소득보장을 지배한 것은 아니다. 개별 가정에서의 사적 부양도 있었고, 종교단체 등 비영리단체에 의한 부양도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공적연금의 보편화는 당대 GDP 배분이라는 본질을 실현키 위한 형식의 재조정이라 할 수 있고, 그 형식은 개별 가정에서의 세대 간 배분이 주된 형식이던 것에서 국가에 의한 사회 전체적인 세대 간 배분으로의 재조정이 주된 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당대 GDP의 배분이라는 본질을 실현하기 위한 형식의 재조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세대 간 배분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2차 대전 후 공적연금을 보편화한 서구사회가 연금수급 연령을 65세로 정한 것과 맞물려 세대프레임을 강화하는 효과와 함께 생애과정을 표준화하는 효과를 낳았다(Kohli, 2007). 아동을 임노동을 준비하는 교육대상으로 전환시킨 것은 19세기 중후반을 지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흐름이었고, 이와 함께 여성을 돌봄자로 재규정한 흐름도 그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흐름이지만, 이것이 2차 대전 후 공적연금의 보편화로 상당 정도로 가시화하였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구성원들의 생애과정은 임노동을 중심으로 하여 임노동을 준비하는 교육기(아동기), 임노동에 종사하는 경제활동기, 그리고 임노동으로부터 퇴장하는 퇴직기로 삼분화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애주기의 표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이 표준화는 주로 남성에게 전형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었고, 여성은 배제된 것이었다. 또 65세라는 연령기준도 생물학적·의학적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노인이 되는 경로나 시기는 개인마다 모두 다른데도 불구하고, 노인기준에서는 연대기적 연령(숫자로서의 연령)을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으로 적용하게 된 것이다. 이는 개인마다의 개성과 차이를 중시한다는 자본주의가 노인연령에서만은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니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공적연금은 당대 GDP의 배분이라는 본질을 세대 간 배분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고, 이는 공적연금에 대한 세대프레임을 강화한다. 세대프레임은 당대 GDP의 배분이라는 본질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비록 기업이 노후소득보장 비용을 분담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이 평소에 기여금을 납부하게 하므로 이 점에서도 공적연금은 당대 GDP의 배분이라는 본질을 가리고, 마치 개별 노동자가 기여금을 납부하여 그 대가로 얻는 것처럼 인식하게 한다. 그런데 세대프레임은 공적연금의 본질을 가리는 역할도 하고, 계급·계층의 문제를 세대 간 문제로 오독하게 하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세대 간 연대를 통해 문제를 완화하도록 접근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또 경제활동기에 기여금을 납부하게 하는 것이 당대 GDP의 배분이라는 공적연금의 역할을 은폐하는 역할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공적연금에 대한 권리의식을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세대프레임과 기여방식이 갖는 의미는 이중적인 것이다.

생애과정과 노동의 변화

퇴직과 공적연금의 보편화로 생애과정의 표준화가 제도화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생애과정의 변화도 진행되었다(Kohli, 2007). 이러한 변화가 진행된 배경에는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기대수명의 연장과 교육기간의 연장 등이 놓여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사실 생애과정의 표준화와 그와 연관된 퇴직 및 공적연금의 보편화는 포드주의적 생산체제와 조응하는 것이었는데(Myles, 1990; Jessop, 2002; Guillemard, 2005; Jackson, 2009), 이 생산체제는 그것이 확립된 이후부터도 계속 변화해 왔지만 1970년대 이후 그 변화는 상당히 본격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낳은 결과 중 공적연금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는 생애과정의 탈표준화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기대수명의 연장으로 많은 나라들은 연금수급 연령을 상향 조정하여 그에 대응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은 연금수급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조정했고, 영국도 68세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토록 조정했다. 네덜란드나 핀란드, 스웨덴, 이탈리아 등은 연금수급 연령을 기대여명에 자동적으로 연동하게 하고 있다(OECD, 2025). 또한 연금수급 연령의 조정 외에 청년층의 생애과정 변화를 반영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OECD는 2005년부터 격년으로 회원국들의 이론적 소득대체율을 계산해 왔고, 이 계산에서 입직 연령을 20세로 가정했으나 2021년부터 이를 22세로 상향 조정하였다. 이는 교육기간의 연장 등 청년층의 생애과정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생애과정의 변화는 한국에서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국가데이터처(2026a)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의하면, 대학 졸업 후 첫 취업에 소요되는 기간이 2005년에 9개월이었으나 2024년에 12개월로 늘어났다. 또 인구동향조사(국가데이터처, 2026b)에 의하면 초혼 연령이 2000년에 남성 29.3세, 여성 26.5세에서 2024년에는 남성 33.9세, 여성 31.6세로 연기되었고, 따라서 첫 자녀 출산연령도 2000년 27.7세에서 2024년 33.1세로 연기되었다. 또한, 국가데이터처의 사회조사에 의하면 자녀의 독립이 어려워 60세 이상 부모와 동거한다는 비중이 2009년 24.8%에서 2023년에 32.0%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변금선 외, 2024). 성인기로의 전환을 위한 청년층의 생애과업 이행이 지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생애과정의 변화하는 중·고령층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OECD(2018)는 한국의 노동시장을 분석한 한 보고서에서 50대 초반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고, 그 이후 중·고령 저임금 노동시장이나 자영업에 내몰리며 그렇게 제2 경력 기간(the second career)이 시작되고, 실질 퇴직연령은 70대 초반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주된 일자리에서의 퇴직 전까지의 경력을 제1 경력 기간이라 한다면, 한국의 입직 연령이 대체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므로 제1 경력 기간과 제2 경력 기간은 사실상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제1 경력 기간의 노동시장도 불평등이 극심하지만, 제2 경력 기간은 대부분 저임금 및 저소득이라는 조건에 놓여 있다. 그리하여 위 [그림 1]에서 보듯이 한국은 노인고용률이 52.2%로 일본의 53.5%에 이어 OECD 최고 수준이지만, 동시에 노인빈곤율(66세 이상 노인빈곤율)도 37.7%로 OECD 최고 수준이다(66-75세의 전기노인의 빈곤율도 26.6%로 최고 수준이다.)(OECD, 2026)

한국의 높은 노인빈곤율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미성숙을 주된 원인으로 꼽아왔는데, 이러한 분석도 일정한 타당성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노인고용률이 매우 높은데도 노인빈곤율이 높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OECD(2018)가 말하는 제2 경력이 시작되어 근로소득이 있지만 이것이 빈곤을 벗어나게 하는 데 큰 효과가 없음을 의미한다. 공적연금 수급권이 취약하다는 것이 노인고용률을 높이는 중요한 원인이지만, 그렇게 높은 고용률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탈빈곤에 효과가 없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근로빈곤은 주로 경제활동 연령기에 적용되는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적어도 한국의 경우에는 그것을 퇴직기의 노인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노인들에게 근로빈곤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공적연금 미성숙의 문제에도 주목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중·고령자 저임금 노동시장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연금개혁을 위한 국가의 역할

1. 연금적절성 기준으로서의 퇴직생애 및 연금생애

전통적으로 연금적절성의 기준으로는 빈곤방지와 소득유지가 제시되어 왔으나, 최근 EU는 이 두 기준에 더하여 퇴직생애(retirement duration) 혹은 연금생애(pension duration)라는 기준을 추가하였다(EU, 2018, 2021, 2024). 퇴직생애는 실질 퇴직연령 때의 기대여명을 말하며, 연금생애는 연금 수급기간을 말한다. 따라서 이 두 개념은 전체 생애 중 퇴직 후의 생애 혹은 연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생애를 의미하며, 각 국가의 정책 등에 따라 퇴직생애와 연금생애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퇴직·연금생애 기준과 관련하여 EU는 연금수급 당시의 소득대체율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구 구성의 변화(배우자의 사망 등), 의료·요양 필요의 증가, 소득수준 및 실질가치의 변화 등에 따른 연금급여의 적절성 변화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또 EU는 적정 퇴직생애가 어느 정도의 기간이어야 하는지 제시하지 않지만, 첫 입직부터 실질 퇴직까지의 노동생애와 퇴직생애 및 연금생애가 조화를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EU가 제시하는 퇴직·연금생애 기준은 이를 생애과정 변화와 연관지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대수명의 연장은 퇴직의 필요성을 더 증가시킨다. 즉, 기대수명이 짧았던 과거에는 상당수의 사람이 퇴직하지 못하거나 퇴직했더라도 짧은 기간 생존했지만, 기대수명이 길어진 오늘날에는 퇴직연령 이후의 길어진 생존기간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되기 때문에, 설사 퇴직연령이 늦춰지더라도 퇴직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연적인 인생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대수명의 연장과 생애과정의 변화가 반드시 서로 간에 필연적인 것인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드러난 현상만 놓고 보면 두 흐름은 병행하여 진행되고 있다. 즉 교육기간이 길어지고, 청년층의 성인기 전환이 지연되며, 실질 퇴직연령이 70대 초반으로 늦춰지는 현상과 기대수명이 연장되는 현상이 함께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들이 동시에 일어남으로써 생애과정의 전체적인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EU가 말하듯 노동생애와 퇴직·연금생애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생애과정에 대한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는 많은 토론과 공론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 필요성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생애과정에 대한 사회적 개입은 단순히 교육생애나 노동생애, 퇴직·연금생애의 기간을 양적으로 조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 생애를 지나는 사람들의 삶의 질, 노동조건, 연금급여의 적절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2. 비용의 분담 및 그것을 위한 제도적 규칙의 확립

앞에서 연금은 기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당대 총산출물(GDP)의 배분이라고 했다. 이는 연금 비용과 관련하여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즉,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비용의 조달은 기금적립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만들어진 총산출물, 즉 GDP 중 어느 부문에서 그 비용을 가져올 것인가의 제도적 규칙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연금에서 중요한 것은 기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GDP를 만들어 낸 생산주체 중 누가 어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하게 할 것인가의 비용분담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유럽 8개국에 대한 라빈느 외(Lavigne, et al., 2024)의 연구에 의하면, 연금 재정부담은 평균적으로 GDP의 14~15% 정도이며, 이중 1/2을 기업, 1/4을 노동자, 나머지 1/4을 국가가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시간이 갈수록 노동과 기업의 분담률은 하락한 반면, 국가의 분담률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2014년에서 2020년 기간에 연금총부담은 GDP의 13.5%에서 14.6%로 상승했고, 그중 퇴직연금 부담의 상승이 좀 더 컸다(<표 1>). 하지만 그렇다고 공적연금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즉, 공적연금의 비중이 보합세 혹은 소폭 상승인 가운데 퇴직연금의 비중이 소폭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와 기업, 국가의 분담 비중을 보면 노동자와 기업의 분담은 2014년 각기 25.0%, 49.4%에서 2020년 24.4%, 48.0%로 소폭 감소하고, 국가의 분담은 25.6%에서 27.6%로 증가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다. 덴마크는 기업 분담이 증가하고 국고 분담이 감소하였으며, 핀란드는 노동자 분담이 증가하고 기업 분담이 감소했고, 스웨덴은 기업 분담이 증가하고 국고 분담이 감소했고, 노르웨이는 노동자와 기업 분담이 감소하고 국고 분담이 증가했다. 또 네덜란드는 노동자 분담이 감소하고 기업과 국고 분담이 증가했으며, 독일과 프랑스는 기업 분담이 감소하고 국고 분담이 증가했다. 기업 분담의 증감은 퇴직연금 비중의 증감과 연관이 있는데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국고 분담이 줄어든 덴마크는 국고 분담률 자체가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이다. 그래서 덴마크, 핀란드와 스웨덴을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은 국고 분담률이 비교적 큰 폭으로 상승했다(노르웨이는 19.0%에서 28.0%, 네덜란드는 15.0%에서 21.0%).

한국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국고 부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며, 또 설사 국고부담을 이야기하더라도 이를 보험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부문에 적용되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즉, 크레딧의 경우 보험원리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여기에는 국고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를 뒤집어 말하면 보험원리가 적용되는 부문에는 국고지원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므로, 공적연금을 민간보험처럼 취급하는 재정안정론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공적연금이 기여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이를 권리로 획득하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이지 민간보험처럼 보험원리를 적용하기 위한 목적에서가 아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연금은 항상 당대 GDP의 배분으로 실현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민간보험사는 당대에 생산된 GDP 중 극히 일부를 자신들의 민간보험을 위해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자사의 보험상품에 자발적으로 가입한 가입자들이 보험계약에 따라 납부하는 보험료를 통해서만 조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민간보험사는 적립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고, 엄격한 수지상등원칙에 따라 보험을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연금은 민간보험과 완전히 다르다. 물론 국가도 당대에 생산된 GDP 중 일부를 가져올 수 있지만, 그 일부의 규모가 민간보험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또 GDP의 일부를 가져옴에 있어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강제력이라 해서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합의절차를 거쳐 승인된 강제력이다. 국가는 당대 GDP의 배분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어느 부문에서 어느 정도로 부담시킬 것인가를 민주적 합의 절차를 통해 제도적 규칙으로 구축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이 규칙은 기금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필요하다. 기금이 있다고 해서 당대 GDP의 배분 규칙이 필요없는 것이 아니다. 기금은 과거에 쌓아둔 자산(주로 금융자산)이며, 이 자산은 구체적인 형태로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실물소비를 위한 청구권이다. 퇴직 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화폐 그 자체가 아니라 소비물자이며, 예컨대 주식의 형태로 기금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 주식이 그 자체로 소비물자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쌓아둔 주식은 금융증서의 형태로 존재하며, 미래의 소비물자에 대한 청구권(금융적 청구권)이며 이 청구권이 미래에 생산되는 GDP의 일부와 교환되어야 소비물자로 전환된다. 부과방식 공적연금은 금융증서든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증서가 없는 상태에서 미래의 소비물자에 대한 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증서 없는 청구권이 미래에 생산되는 GDP의 일부와 교환되어야 소비물자로 전환된다. 기금을 쌓는 적립방식이나 기금이 없는 부과방식이나 둘 다 미래 소비물자에 대한 청구권이며, 이 청구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미래의 GDP 일부와 교환되어야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다만 그 청구권이 증서 형태로 뒷받침되느냐(적립방식) 사회적 약속의 형태로 뒷받침되느냐(부과방식)만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금이 있든 없든 미래의 소비물자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기금이 있든 없든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부과방식의 경우에는 인구학적 변수가 중요하지만, 기금을 쌓아두는 적립방식의 경우는 국내외 금융시장의 가격변동 등 금융적 불확실성에 노출되고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을 이런 금융적 불확실성의 형태로 전가한다.

그리고 미래에 생산되는 GDP의 일부와 교환되어야 하는 것은 동일하므로 미래의 생산성에 의존하는 것 역시 동일하다. 그런데 부과방식은 미래의 생산성 의존 경로가 비교적 단순하다. 미래 GDP의 일부에 조세든 기여금이든 징수하면 된다. 하지만 적립방식은 그 경로가 더 복잡하고 또 불안정할 수 있다. 기금은 대부분 금융자산에 투자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기업의 생산자본으로 전환되어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금융자산에 투자되는 한 그것은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에 크게 노출될 수밖에 없고,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국내의 정책적 개입만으로 제어하기가 매우 어렵다. 게다가 적립방식에서 쌓는 기금의 일차적 재원은 대부분 노동자·서민이지만 그렇게 하여 쌓은 기금은 수익률 제고를 명분으로 대부분 국내외 거대 금융자본에게 투자된다. 부과방식에서는 노동자·서민들이 매달 납부한 기여금이 곧바로 당대 노인들에게 연금으로 지급되어 국내로 순환하지만, 적립방식에서는 일부의 기여금만 연금으로 지급되고 나머지 기여금의 대부분은 투자의 명목으로 국내외 금융자본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국내 경제로 순환되는지는 금융시장 변동성을 감안한 금융자본의 결정에 달려있게 된다. 물론 정부가 여기에 일정하게 개입하지만, 금융시장 변동성에 따른 금융자본의 선택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과 같은 금융화 흐름이 강하고,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거대한 기금을 운용하는 것은 자칫 공적연금이라는 제도를 금융적 수익률에 종속시키는 금융화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노후소득보장을 금융자본의 선택에 맡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노후소득보장의 금융화이고, 연기금 자본주의(pension fund capitalism)(Oreziak, 2022)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적립방식에서는 기금운용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적 통제장치를 통해 당대 GDP와의 교환규칙을 정하고, 이 규칙에 따라 금융자산이 교환되어 노후소득보장이 금융자본의 통제 하에 놓이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앞에서 이야기한 국고부담으로 돌아가면, 이 국고부담은 연금이 당대 GDP의 배분이라는 본질을 다른 형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본질 자체로 실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즉, 국고부담은 흔히 말하듯이 연금재정의 확보만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연금의 본질을 본질대로 실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기여방식을 국고방식으로 완전히 대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기여방식이 비록 당대 GDP 배분이라는 공적연금의 본질을 은폐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공적연금 수급권을 권리로 존재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연금적절성의 한 기준인 소득유지 기능의 달성에는 소득비례방식의 급여체계가 유리한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기여방식은 일정하게 유지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와 기업, 국가의 분담 비중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이며, 나아가서 국고지원을 할 때 국고의 재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등으로 앞으로는 자본의 생산성이 매우 높아질 것이므로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잉여가치를 어떻게 사회화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현재 한국은 국민연금기금이 너무나 큰 규모로 존재하는 관계로(최근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로 국민연금기금은 GDP의 50%를 훨씬 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국고분담 비중이 매우 낮다. 향후 기금의 처분을 통한 연금 지급의 시대가 오면 기금 처분의 규모가 매우 빨리 커질 수 있고, 이는 자칫 국민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으므로 지금부터 국고의 분담비중을 높여나갈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또한, 기금을 금융자산에만 투자할 것이 아니라 기금조성의 일차적 원천인 노동자·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 투자하는 사회투자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결론에 대신하여

앞의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2025년 3차 연금개혁 이후 한국 사회의 연금 담론은 크게 ‘축소(기초연금 표적화)-정체(국민연금 제도 개혁 정체)-금융화(기금수익률 최우선화)’의 흐름에 의해 지배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흐름을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흐름은 ‘금융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사회 연금 담론은 3차 개혁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 3차 개혁 이전은 단순히 재정론이 지배하는 가운데 보장성 강화론이 그에 대항하여 대안담론을 주장하던 담론구도였다면, 3차 개혁 이후의 연금 담론은 금융화를 키워드로 하여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현재 정부나 여당은 금융화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의 활성화로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이 크게 향상되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기금수익률이 올라서 기금소진 시점이 수십 년 연기된 것 아니냐고 발언한 바가 있다. 물론 한국사회는 거대한 기금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았고, 지금도 조성하고 있으므로 현재 기금규모가 엄청난 것 자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기금규모가 큰 것과 그것을 금융적 수익률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기금은 노동자·서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입자들이 현재의 소비 일부를 유보하고 조성한 것이며, 여기에 기업의 일부 부담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우리 사회의 공동의 집합적 기금이다. 그렇다면 높은 운용성과가 발생했을 때 그 성과를 모두 ‘기금이 몇 년 더 버틸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숫자로만 환산할 것이 아니라, 급여의 적정성, 보험료 부담의 공정성, 그리고 가입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장기적 사회투자와 연결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단년도 수익을 현금처럼 나누거나 연금기금을 임의로 전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수익률의 상승이 일시적인 시장변동을 넘어 실제로 장기적인 재정여력을 확대하였다면, 그 여력을 기금소진 시점의 연장에만 귀속시킬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의 보장성과 기금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는 데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금의 사회적 역할 확대와 관련해서는 이미 논의한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공공주택이나 국공립보육시설, 공공노인요양시설의 건립 등이 논의되어 온 방안들이며, 또 청년 창업투자나 벤처투자 등도 논의된 바가 없지 않다. 이런 사회적 인프라 투자로 노동자·서민의 현재 삶이 개선된다면 장기적으로 보면 기금 조성에 필요한 기여금 납부를 더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국내 반도체 기업이 거둔 막대한 이익의 분배를 둘러싸고 노사가 갈등하고 협상했듯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집합적 자산인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성과 역시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둘러싼 공론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사상 최고 수준의 운용수익을 거두고도, 그 의미를 오직 기금소진 시점의 연장으로만 축소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태도이다. 기금은 기금 자체를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금을 위해 존재하며, 연금은 사람들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주|

  1. 1차 및 2차 연금개혁이 모수개혁을 내용으로 한 것만은 아니다. 퇴직금 전환금 폐지나 퇴직연금 도입, 기초노령연금 도입 등은 구조개혁의 성격을 갖는다(연금행동 정책위원회, 2025 참조). 따라서 한국에서 지금까지 마치 구조개혁은 한번도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도외시한 일면적인 평가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다. ↩
  2. 2024년에 실시된 연금개혁 공론화의 전반적인 진행과정에 대해서는, 공론화위(2024) 참조. 연금개혁 공론화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로는, 주은선(2024), 김연명·최영·권나영(2025), 남찬섭(2025a) 참조. 그리고 연금개혁 공론화를 포함하여 3차 연금개혁 과정에서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담론들 특히 세대담론이 어떻게 소비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윤승준·김규희·김예닮·김찬울(2026) 참조. 또한, 3차 연금개혁 전개과정과 귀결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로는 남찬섭(2025b) 참조. ↩
  3. 연금개혁 공론화에서 보장성강화론은 소득대체율 50%-보험료율 13%안을 제시했고 재정안정화론은 소득대체율 40%-보험료율 12%안을 제시했다. 최종적으로 보장성강화론은 시민대표단의 56.0%가 찬성했고 재정안정화론에 대해서는 시민대표단의 42.6%가 찬성하여 보장성강화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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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복지동향> 2026년 8월호(제3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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