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지켜온 81년: 2026 원수폭금지세계대회 히로시마대회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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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참여연대는 원수폭금지 일본국민회의(이하 원수금)의 초청으로<원폭 81년, 2026년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는 전 세계 피폭자들과 연대하여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리고, 국제연대를 논하는 자리입니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마음을 담아, 평화군축센터 김동진 실행위원과 이미현 협동사무처장의 참가기를 게재합니다.

기억이 지켜온 81년: 2026 원수폭금지세계대회 히로시마대회 참가기

김동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 한신대학교 한반도평화학술원 석좌교수

지난 8월 3일부터 6일까지 원수폭금지 일본국민회의(원수금)의 초청으로 <원폭 81년, 2026년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 히로시마 대회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8월 5일 ‘평화와 군축’ 워크숍과 8월 6일 국제심포지엄에서,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에서 논의해 온 동북아 평화와 핵 문제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국제심포지엄에는 미국 피스액션(Peace Action)의 세스 레어(Seth Lehr) 선임국장과 아키바 다다토시(秋葉忠利) 전 히로시마 시장이 함께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 세계대회도 8월 4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헌화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어 평화기념공원 헌화, 평화행진, 그리고 히로시마 대회 개회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대회의 첫 순서가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헌화라는 사실은 이 대회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희생된 약 70만 명 가운데 7만 명가량이 조선인이었고, 살아남은 이들과 그 후손들은 지금도 원폭 비극의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휴가를 내고 모인 사람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회의장의 논의만큼이나 그 회의를 가능하게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원수금 활동가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청소년·청년 평화운동인 ‘피스 메신저’, 그리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대회를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참가자 대부분은 각자의 직장에서 휴가를 내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해마다 참가자의 70~80%가 새로운 얼굴이고, 이들은 대개 직장 동료, 특히 노동조합 동료의 권유로 참여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원수금 대회는 핵무기의 위험과 참상을 머리로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이 됩니다. 피폭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부서졌는지를 마주하면서,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이어질 활동의 출발점이 됩니다. 60년 넘게 이어져 온 평화 운동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의 기념식과 사람의 기억

같은 도시에서 열리는 행사라도 결이 다르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8월 6일 아침 히로시마시가 주관하는 기념식과 평화기념자료관의 전시는 같은 사건과 사람들을 다루면서도, 여전히 일본이라는 국가를 중심에 둔 역사 해석 위에 서 있었습니다. 반면 원수금의 세계대회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헌화로 시작해 각국 시민운동의 경험을 나누는, 인류애 중심의 행사였습니다.

이 차이가 사소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핵을 국가안보의 문제로 보는 사고는 결국 억지력이라는 이름의 현실주의로 이어집니다. 동북아 여러 나라에서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핵무장과 군비 증강에 찬성하는 여론이 늘고, 실제로 정책을 바꾸려는 시도가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1945년 이 도시에서 고통을 겪은 것은 국가가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안보가 오직 국가의 안보로만 정의될 때, 사람은 그 이름 아래 언제든 희생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잊는 것이 가장 큰 위험입니다

2026.08.03~08.06 원폭 81년,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 (사진=원수금)

국제심포지엄 발표에서 저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81년 동안 핵무기가 다시 사용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흔한 대답은 억지, 곧 공포의 균형입니다. 그러나 공포는 도박을 부르고 오판을 낳습니다. 저는 실제로 선을 지켜 온 것은 사람의 기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피폭자들이 각국 정부나 국제사회로 하여금 이를 망각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기에, 어쩌면 추상적 개념일 수도 있는 전략/전술 무기는 1945년 8월 6일과 9일 집에 돌아오지 못한 실제 사람들의 얼굴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기억이 옅어 지고 있습니다. 올해 NPT 평가회의는 유엔 사무총장이 개회사에서 ‘집단적 망각’을 경고했음에도, 5월에 최종 문서를 채택하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세 번 연속 실패입니다. 2월에는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이 만료되어, 반세기 만에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어떤 핵군축 협정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운명의 날 시계는 자정 85초 전, 역사상 가장 가까운 지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지난해 세계 군사비는 2조 8,870억 달러로 11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한반도의 사정도 쉽지 않습니다. 남북의 군 통신선은 여전히 닫혀 있고, 대규모 연합훈련은 계속되며, 양측의 작전계획은 선제타격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는 우리 국민의 약 80%가 자체 핵무장에 찬성한다고 답합니다. 원폭의 기억을 가족의 아픔으로 간직한 나라가 이제 핵무기의 유혹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국제심포지엄 패널과의 만남

2026.08.03~08.06 원폭 81년,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 (사진=원수금)

심포지엄에서 함께 패널에 참여한 아키바 다다토시 전 히로시마 시장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원래 미국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쳤던 그는, 일본이 전범 국가이니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것은 잘한 일이라는 미국인들의 입장을 여러 차례 접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안식년으로 일본에 잠시 돌아왔을 때는, 일본 정부가 미일 안보동맹을 고려해 히로시마의 인명피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려는 모습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핵무기가 인간과 인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정치 활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국가라는 사실과, 그 국가가 자국민에게 요구한 희생과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분명 구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후자는 ‘일본’이라는 국가 단위 아래 쉽게 묻힙니다. 남과 북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서 양쪽 모두 상대를 이웃이 아니라 적으로 보도록 가르쳐 왔습니다.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 곧 서로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합니다. 아키바 전 시장이 제안하는 2035년까지의 선제불사용 선언과 2045년까지의 핵폐기 구상도, 국가 간 이해관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의 연대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연대로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우리 모두 큰 틀에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부족한 것은 계획이 아니라, 경계선 너머의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는 인도주의와 인류애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이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앞에 함께 서고, 미국의 평화운동가가 피폭자 곁에 앉을 때, 어떤 정상회담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난 81년 동안 핵무기가 다시 사용되지 않은 이유는 국가 사이의 핵억지력이 아니라 원폭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사람으로서의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기억을 지켜 온 피폭자들의 육체적 시간은 유한합니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피폭자 평균 연령은 86.7세입니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는 내년 6월 조직의 존속 여부를 표결하기로 했습니다. 피해자들의 기억이 우리를 핵무기로부터 보호하는 힘이었다면 이들의 기억을 어떻게 기릴 것인가는 이제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오는 11월 말에는 핵무기금지조약(TPNW) 제1차 검토회의가 열립니다. 원수금은 이번 대회의 논의를 검토회의까지 이어가겠다고 합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한국 시민사회에서 핵무기에 대한 접근을 국가안보의 차원이 아니라 전쟁 가운데 고통받는 사람과 사람의 평화연대로 재구성하는 논의를 계속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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