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제주생명평화대행진 연속기고③] 깃발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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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으로 시작해 2016년 제주생명평화대행진으로 이어져 온 대행진이 올해로 12회를 맞습니다.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이제 일상에서의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차별을 넘어 평등으로 가는 연대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대행진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4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연속기고①] 전쟁의 시대, 평화의 길을 열기 위해 우리는 지금 강정으로 간다
[연속기고②] 평화의 걸음이 연대의 힘으로
[연속기고③] 깃발이 되는 법

깃발이 되는 법

그린씨 / 혼디자왈(더불어숲), 그린디자이너

함께하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곳곳에 그린 그림1_그린씨▲함께하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곳곳에 그린 그림1_그린씨 ⓒ 2026제주생명평화대행진조직위원회

2012년 3월, 저는 서울에서 ‘구럼비’ 발파 소식을 뉴스로 들었어요. 그날 만났던 이들에게 이 무서운 소식을 전해보았지만, 다들 어떠한 말을 덧붙이지 못하고 고요하고 답답한 공기가 흘렀던 기억이 납니다. 아,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이런 곳이구나, 각자의 삶이 바쁘고, 머나먼 섬 제주는 인생에 한두 번 여행 가는 곳일 뿐, 닿기에 어렵구나 알게 되었죠. 하지만 제게는 이상하게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가본 적 없는 ‘구럼비’가 깨어지고 부서졌다는 소식이 큰 울림과 진동이 되어 2012년 끝 겨울에 구럼비가 살고 있는 강정마을에 도착했어요.

함께하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곳곳에 그린 그림2▲함께하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곳곳에 그린 그림2 ⓒ 2026제주생명평화대행진조직위원회

함께하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곳곳에 그린 그림3_그린씨▲함께하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곳곳에 그린 그림3_그린씨 ⓒ 2026제주생명평화대행진조직위원회

생각해 보면 아는 사람이 하나 없이 (지금은 없어진)평화센터로 찾아가 주일 미사를 함께 하며, 무엇을 하면 좋을지 여쭤보았고 그렇게 바다를 둘러싼 펜스를 바라보며 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길거리 미사 천막과 길거리에서 차갑고 시끄러운 마음을 달래려 알록달록 그림을 그리다 보니, ‘무지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죠.

그 후로 여름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깃발이 된 사람들을 따라~ 강정평화대행진’의 동진, 서진 탑차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200~300개의 그릇을 뽀드득뽀드득 씻어내는 (‘누’가 해주면 좋겠네, ‘누’)설거지팀으로 손을 보태였고, 벌써 10년 전, 평화바람의 문정현 신부님과 여러분들이 강정을 지키자며 평화센터 앞에 세우신 장승을 본떠서 그해 2016년 강정평화대행진에서 동쪽으로 걷는 동진은 동장승을, 서쪽을 걷는 서진은 서장승을 ‘함께 그려 보자’는 생각으로 그리는 친구(손보배)들과 재료를 챙겨 움직였어요. 그렇게 ‘깃발이 된 사람들’과 함께 알록달록 색을 입혀 마지막 날, 무대 장식으로 ‘펄럭펄럭’ 날렸지요. *그때 함께 그려주신 동장승과 서장승 여러분과 무대에 설치하느라 애써주신 현주언니께 고마운 마음을 전해요.

2016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이 함께 완성한 동장승 그림_그린씨 다 같이 그린 그림▲2016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이 함께 완성한 동장승 그림_그린씨다 같이 그린 그림 ⓒ 2026제주생명평화대행진조직위원회

제게는 함께 걷고, 그리고, 뽀드득뽀드득 설거지하며, ‘저기가 그 바다야, 우리가 바다야, 우리가 구럼비야~’하고 알려준 소중한 이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 소중한 이들이 지어 준 *할망물식당의 종환삼촌 고맙습니다, 생명의 밥 먹고 *정선녀 공소회장님이 모아두신 보자기와 이불 모 위에 그림 그리며, 이어가는 씨앗들을 손에 꼬옥~ 쥐고, 다음 봄이 오면, 심고 가꾸는 삶에 대해 배웠어요.

함께살자오름들_그린씨▲함께살자오름들_그린씨 ⓒ 2026제주생명평화대행진

그 많은 바람에도… 베어진 비자림로 숲을 지나~ 오름 이어 오름으로 이어지는~ 제주 동쪽 마을은 제주 제2공항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어요. 이 작은 마을의 주민들이 10년 동안 도청 앞으로, 정부 청사 앞으로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여전히 답답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동쪽 마을주민들과 세상에서 작은 단체<혼디자왈(더불어숲2020)>을 만들었어요. 마을학교의 아이들과 만나 제주의 생태와 환경에 대해 나누고, 제주 동쪽 오름과 습지를 조사하고, 바다와 숲에서 살아가는 새의 이름을 알리는 등의 작고 소중한 생명 활동을 알리고 있죠.

비인간존재들의목소리_ 강정의친구들과함께그린깃발들▲비인간존재들의목소리_강정의친구들과함께그린깃발들 ⓒ 2026제주생명평화대행진조직위원회

올해 제주해군기지 준공 10년을 맞아, 지난 7월 17일에는 강정의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에서 <강정친구들>과 <혼디자왈> 공동 주최로 제주 동쪽 오름들의 사계절 식물보고회를 가졌어요. 보고회를 진행하는 동안, 반갑고 아꼬운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와 몇 번이고 뭉클해지는 마음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자. 제주 동쪽의 성난 오름들의 이름으로 고백해 보았네요.

성난 오름을 부탁해_식물보고회 실물보고회▲성난 오름을 부탁해_식물보고회실물보고회 ⓒ 2026제주생명평화대행진

전쟁 없는 세상을 바라는 깃발이 된 사람들이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을 준비하고 있어요. 오늘도 이어지는 어리석고 참혹한 세계 곳곳의 전쟁 소식을 들으며, 여전히 아픔으로 남겨진 제주 4.3항쟁을 기억합니다. 평화는 무기를 들고 말할 수 없고, 전쟁은 전쟁을 낳으며, 기후 위기를 가속화 합니다.

부디, 함께 걸으며~ 함께 살자~ 생명으로 이어지자~ 는 제주의 생명과 평화의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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